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어머니의 유산’이라는 책 제목이 다시 보였다.
아, 어머니의 유산이 의미하는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 물질적 경제적 가치의 유산 뿐이 아니구나.
어머니가 남겨주신 것은 딸의 전 생애에 이미 걸쳐있고, 돌아가시기 전 이미 받았고, 돌아가신 순간 경제적 가치로 넘겨졌으며,
앞으로 미쓰키가 남은 여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반영될 것이다.
유산을 성격별로 항목별로 구분해보면 무엇이 있을까?
첫번째로, 경제적 도움이 되는 자산. 미쓰키는 어머니가 살던 집을 팔면 받을 수 있는 돈을 언니와 나누어 가질 수 있다.
미쓰키는 어쩌면 길고도 고된 어머니의 병수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쓰키가 어머니의 말년을 보며 ‘제발 언제 죽어줄까’를 속으로 외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하지만 막상 유산을 물려받게 되고, 그 돈으로 남은 생을 남편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을 때는
어머니와 그의 남겨진 유산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감사하게 되었다. (자산이란 그런 것일까)
두번째로는, 어머니의 취향. 값 비싼 것으로 치장했던 어머니의 소비, 치장 습관이 딸에게 영향을 주었다.
미쓰키는 어머니의 사치에 대해 치를 떨었으나, 나는 이것이 물려받을 만한 꽤 좋은 습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옷을 예로 들어보아도, 대게 엄마의 옷장과 딸의 옷장은 아주 비슷하거나, 아주 극명하게 다르다.
엄마의 취향이 딸을 점령한 경우이거나, 난 엄마와 철저히 다르다며 두드러지게 반대되는 취향의 옷을 입는 경우.
(이 경우 엄마와 옷을 전혀 공유할 수 없어서 오는 손해가 꽤 크다)
이렇듯 엄마의 취향대로 ‘입어 졌던’ 옷은 사춘기를 넘어 딸에게 길게 영향을 남긴다.
전자든 후자든, 경제적인지보다 우선되어 심미적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결단력있는 소비 습관, 안목은 물려받아 지는 것이다.
비싼게 좋고 예쁘더라는 경험에서 나오는 안목은 딸이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되는 종류의 사치는 아니다.
물론 경제적 상황이 중요한 변수이겠으나, 미쓰키의 어머니의 사례에서도 보았듯 주머니사정에 의해 쉽게 포기되는 습관이 아니다.
미쓰키가 혼자 살 집을 구하며 제일 먼저 외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얇고 좋은 천을 창문에 걸어두고 뿌듯해하는 모습은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세번째로, 이성에 대한 태도. 미쓰키의 어머니가 같이 살기로 선택했던 여러 명의 남자들과 그들에 대한 태도이다.
미쓰키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온 힘으로 부정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는 거의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쓰키는 책이 끝날 때까지 남편 데쓰오만을 생각했다.
(마쓰바라씨의 등장과 그의 명함을 찢으며 퇴장하는 전개도 결국 데쓰오를 생각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했든 사랑하지 않았든, 미쓰키는 엄마와 철저하게 다른 태도를 보여줬다. 이렇게 달라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까.
어머니의 생애에 걸친 남자들을 바라보며(요코하마의 그 남자까지), 미쓰키는 계속해서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내려보았을 것이다.
어떤 이성을 내 곁에 두는 것이 좋을지, 이성에게 어떤 것을 취하면 좋을지. 그러면서 미쓰키의 배우자에 대한 가치관이 성립된 것은 아닐까.
미쓰키가 파리에서 데쓰오를 선택하게된 과정에서 미쓰키는 어머니와 철저히 달랐다.
데쓰오의 재력보다 지적인 매력을 높이 샀으며, 성대한 결혼식과 예쁜 드레스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미 결정해놓은 것 처럼 자신의 결혼을 부모에게 통보했을 뿐이었다.
또한 미쓰키가 데쓰오와 헤어지는 과정은 필요 이상으로 이성적이서, 미쓰키의 MBTI까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아마 ISTJ?)
미쓰키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지독하게 일방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미쓰키는 데쓰오에게 공평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의 리드에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표류하다가 끝맺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들 덕에 흥미진진했으나 내가 원하는 결말대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 읽었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고민하며 읽었는데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나서 그녀가 딱히 전하고싶은 교훈같은 건 없었고,
그저 이 3대의 모녀의 각 시대의 삶을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구나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산으로 받은 것과
그 중에서 물려받았으나 부모와 같지 않은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미쓰키가 언니에게 밀려 어머니에게 항상 홀대받는 둘째였음에도,
자신만의 선택을 해나가며 50대에 비록 건강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당당한 삶을 살기 시작하게된 계기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50대의 나이라면 부러워할만한 삶이다.)
추가로 이 책에서 더 고민해볼만한 부분이 있다면 (독서 모임용)
-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시대적 배경에 따른 태도,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는 딸들의 고민 (일본 역사를 잘 몰라서)
- 미쓰키는 왜 그렇게 어머니를 잘 챙겼는지.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 미쓰키는 데쓰오에게 그렇게 밖에 하지 않았을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도)
- 호텔에서의 10일은 미쓰키에게 어떤 힐링이 되었을까? 어떤 의미의 힐링일까? (더 괜찮은 방식은 없었을까?)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양육 방식에 따른 자녀의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자신에 대한 나의 생각/존중 이라고 한다면,
첫째에 비해 케어받지 못했던 둘째 미쓰키는 자존감 형성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었다. 하고 추천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뻔하지 않게 끌고 갔던 진행에 손을 뗄 수 없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책을 읽던 중간 멍을 때리며 생각해보게되는,
감정이입이 잘되었던 소설.
최근 엄마와의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딸이라면
눈물과 한숨과 함께 손에서 놓지 못할 소설.
총평 : ⭐️ ⭐️ ⭐️ ✨(3.5)
흥미 유발 : ⭐️ ⭐️ ⭐️ (3.0)
쉽게 읽히는 글 : ⭐️ ⭐️ ⭐️ ⭐️(4.0)
감성 지수 : ⭐️ ⭐️ ⭐️ ⭐️(4.0)
신선함 : ⭐️ ⭐️ ⭐️ ✨(3.5)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 인터뷰
https://ch.yes24.com/Article/View/54537
일본 현대 문학의 거장,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 인터뷰 | 예스24 채널예스
어머니가 사망한 날, 실버타운에서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따져보는 자매의 통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문 연재 당시 모녀 관계와 나이듦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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