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인주인자 선언 > 을 읽어봤는가.
< 쾌락독서 > 를 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 이유는 300페이지 여간 책에 대한 찬양만 늘어놓는 이 책이 매력적이게 읽히려면,
저자의 행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로지 저자에 대한 호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매달 중앙일보에 오피니언 칼럼을 한 면씩 쓰셨다.
그 당시면 아직 베스트셀러 작가, 드라마 원작 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이다.
1,000자도 안되는 하나의 글이 사회초년생들 사이에서 카톡 링크로 공유됐던 기억이 있다.
내가 직장생활 2년차가 막 되던 시점이라 기억한다.
중앙일보 오피니언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새해 첫 칼럼이다. 거창하기만 한 흰소리 말고 쓸모 있는 글로 시작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포함한 전국 다양한 직장의 부장님들 및
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명심할 것들을 적어 보겠다. 경어체가 아님을 용서하시라.
저녁 회식 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 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밥 먹으면서 소화 안 되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들 해 봐’ 하지 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서로 알잖나.
필요하면 구체적인 질문을 해라. 젊은 세대와 어울리고 싶다며 당신이 인사고과하는 이들과 친해지려 하지 마라.
당신을 동네 아저씨로 무심히 보는 문화센터나 인터넷 동호회의 젊은이를 찾아봐라.
뭘 자꾸 하려고만 하지 말고 힘을 가진 사람은 뭔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라.
부하 직원의 실수를 발견하면 알려주되 잔소리는 덧붙이지 마라. 당신이 실수를 발견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축돼 있다. 실수가 반복되면 정식으로 지적하되 실수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인격에 대해 얘기하지 마라.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개떡같이 말해 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술자리에서 여직원을 은근슬쩍 만지고는 술 핑계 대지 마라. 취해서 사장 뺨 때린 전과가 있다면 인정한다.
굳이 미모의 직원 집에 데려다 준다고 나서지 마라. 요즘 카카오택시 잘만 온다.
부하 여직원의 상사에 대한 의례적 미소를 곡해하지 마라. 그게 정 어려우면 도깨비 공유 이동욱을 유심히 본 후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는 요법을 추천한다. 내 인생에 이런 감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용기 내지 마라.
제발, 제발 용기 내지 마라.
‘내가 누군 줄 알아’ 하지 마라. 자아는 스스로 탐구해라. ‘우리 때는 말야’ 하지 마라.
당신 때였으니까 그 학점 그 스펙으로 취업한 거다. 정초부터 가혹한 소리 한다고 투덜대지 마라. 아프니까 갱년기다.
무엇보다 아직 아무것도 망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하려면 이미 뭔가를 망치고 있는 이들에게 해라. 꼰대질은, 꼰대들에게.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2017.01.3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189114
이 글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자,
다음 칼럼의 제목을 " 부장님들께 원래 드리려던 말씀 "으로 올리셨다.
적어도 < 개인주의자 선언 >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음 글의 제목만 보고도 ㅋㅋㅋㅋ 를 날릴 수 밖에 없다.
이 분은 무려 서울대 법대에 하버드 로스쿨 석사를 졸업하신 판사시다.
게다가 부장 판사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969년생으로 우리네 부모님뻘이시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이 굉장한 MZ미는 무엇일까.
뿐만아니라 드라마 < 미스함무라비 >와 < 악마판사 > 의 원작 소설을 집필하셨다.
나도 직장생활 10년 안되게 하고도 젊은 꼰대 소리를 듣곤 하는데,
30년을 판사 생활을 하고 어디에서 저런 신세대미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 쾌락독서 > 를 읽으며 발견한 것은,
수 십년동안 읽어온 반항적인(?) 책들 속에
변하지 않는 젊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다른 부장님과 다른 인간미는
그가 읽은 다양한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책 속의 책, 문유석 판사가 추천하는 책 목록 >
김만중, 『구운몽』, 정병설 옮김, 문학동네, 2013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무라카미 하루키, 「예스터데이」, 『여자 없는 남자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2014
로라 베이츠,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 박진재 옮김, 덴스토리, 2014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인생』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서은국, 『행복의 기원』
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이동진, 『이동진 독서법』
...
< 쾌락독서 > 문유석 판사, 2018
이 책들을 소개하는 판사님은 글 속에서 엄청 진지하고 신나있으시다.
수 십년을 읽어도 매번 새로운 글 앞에서 진지해지는 모습이
젊은 생각을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판사님의 본 모습은
쉬는 날이면 딸들과 TV를 피해 캠핑 의자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서 해를 쬐며 책을 읽는다는 책덕후 아저씨인데,
실제로 보면 우리네 아버지의 주말 도피의 모습 뿐일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치있고 느낌있고 지적여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평생의 ' 확신의 행복한 글 읽기 ' 가
문장에서 솔직함과 거침없음으로 발현되어
" 글쓰기와 읽기는 행복해!!! " 하는 음성 지원을 듣게한다.
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계속해서 글을 읽고 싶게 만든다.
정말 '독서'의 '쾌락'을 부르는 책이다.
저자가 ' 나 평생 책만 읽었어요! ' 라고 외치는 이 에세이에서
책을 통해 삶을 배운 한 어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책을 읽는 것이 ' 쓸모없는 일 ' 일 수 있다고 말한다.
" 하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있는 일을 이미 한 것이 아니냐고 "
나에게 책이란
운동신경 제로의 꼬마에게 방구석에서 허풍선이 남작과 가르강튀아를 따라 대모험을 떠나게 해주던 날개.
부잣집 도련님 친구의 천장까지 가득찬 서가 앞에서 남의 인생을 빼앗고 싶은 리플리의 심정을 느끼게 하던 동경.
세로글씨의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기며 제갈량, 양산박 호걸, 오다 노부나가, 사이토 도산을 만나러 가게 해주던 타임머신.
맹수의 포효에 몸을 떨며 비니키우스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작은 새 같은 리기아를 보며 조숙하게 찾아온 사춘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 나는 어느 쪽 인간일까 고민하게 하던 중2병앓이.
대학 문에 들어선 후 접한, 암호 같은 줄임말로 불리던 모피어스의 빨간약들.
하지만 어느 이즘보다 먹고사니즘이 중하기에 억지로 머리에 쑤셔넣어야 하던 지식의 파편들.
밥벌이는 하면서도 변하는 세상의 가속도를 감히 따라잡아보려 번지르르한 실용적 지식만 찾아 헤맨 어리석음의 증거들.
뒤늦게 아무 써먹을 데 없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던 옛 기억을 떠올려 재회하는 고전이라는 이름의 첫사랑들.
하지만 속절없이 〈아는 형님〉 〈왕좌의 게임〉 다시보기와 카톡방, 페북에 넘쳐나는 석 줄짜리 언어들에
뒷전으로 밀리곤 하는 퇴기退妓.
언제나 사랑했고,
언제나 쉽게 버렸던 친구.
널 읽고 싶어.
마지막 장까지.
< 쾌락독서 > 문유석 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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